미풍이 코끝을 간질이는 봄의 문턱. 무거운 외투를 벗은 거리는 한결 화사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부쩍 가벼워졌다. 이제, 파릇파릇 새옷을 갈아입는 공원마다, 강 둔치마다 가족단위 운동객들로 붐빌 때다. 가족과 함께하는 운동만큼 새봄을 활기차게 맞는 데 더 좋은 게 있을까. 건강과 함께 가족간의 화목도 다질 수 있다. 찜질방에서 억지로 빼는 땀이 아닌, 몸을 움직인 정직한 땀. 상쾌하다.
#가족과 운동하기 1- ‘걷기가족’ 김미경씨네
“엄마, 오늘은 안 나가요?” 분당에 사는 김미경씨(33·회사원)가 퇴근해 저녁을 먹고 나면 태경이(한솔초4), 민창이(한솔초2) 남매가 합창한다. 1주일에 3번 정도 집앞 탄천으로 나가 1시간 반 정도 산책한 후 돌아오는 것이 이 가족의 일상. 그날 학교에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며 재미있는 얘깃거리들을 나누고 돌아오면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 버린다. 지난 겨울에도 이 일정은 변함없었다. 이 가족은 걷기에서 더 나아가 한달에 두번 정도 나서는 1박2일 도보여행의 매력에도 푹 빠져있다.
이 가족이 워킹을 하게 된 것은 재작년 5월쯤. 딸과 함께 한 방송사의 공개방송 프로그램에 참가하려고 홈페이지를 찾았다가 우연히 한국워킹협회가 실시하는 워킹리더교육 공고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평소 운동에 관심이 많던 김씨인 만큼 그냥 넘길 리 없었다. 1박2일 연수를 받고 나서 걷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후 한달에 한번 협회의 걷기행사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다 보니 아이들까지 좋아하게 됐다. 처음엔 “걷기가 무슨 운동이냐”며 핀잔 주던 남편도 한번 참가하고 나선 지난 10월 워킹리더 2기 훈련을 받았다. |관련기사 M2면
예부터 등산이나 마라톤 등 운동을 좋아했던 가족이지만 요즘은 “걷기야말로 가족끼리 함께 하기에 더없이 좋은 운동”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쉬엄쉬엄 서로 얘기도 하고 ‘아빠 힘내세요’니 ‘아기염소’ 등 노래도 함께 부르며 걷다보면 땀도 나고 신도 난다.
한달에 두세번씩 주말이면 각자 자기 물과 먹을 간식, 손수건, 장갑 등 배낭을 꾸려 도보여행을 떠난다. 보통 1박2일 코스로 20㎞ 넘게 걷는데, 섬진강변 50㎞를 걸었던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지난주엔 대관령 목장길을 따라 25㎞를 다녀왔다.
힘들지 않을까? 처음엔 발이 아파 울기도 했지만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과 주위의 칭찬을 한번 맛본 아이들은 오히려 먼저 배낭을 꾸릴 정도가 됐다. 도보여행을 하며 끈기와 자신감이 한층 더해진 아이들. 길가의 꽃 한송이, 풀 한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일기에 감상을 적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 아빠는 대견하기만 하다. 여행후엔 온 가족이 시원한 온천욕을 하며 피로를 푸는 것도 도보여행의 재미로 자리잡았다.
얼마전 4학년에 올라가며 사회과 부도를 받은 태경이는 무척 흥분했다. ‘아니, 내가 갔던 곳이 이렇게 많이 나오잖아?’ 요즘 남매는 우리나라 지도를 펴 놓고 도보여행했던 곳을 길따라 형광펜으로 체크할 정도로 열성이다. 3월엔 인천 무의도 25㎞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가족과 운동하기 2-운동으로 ‘몸’ 만든 김정환씨네
2년 전만 해도 휴일이면 늦잠 자고, 아들과 컴퓨터 게임하며 데굴데굴하다가 부인으로부터 타박 받기 일쑤였던 김정환 차장(37·대웅제약 약사팀). 지금은 주말이면 말하지 않아도 온가족이 일사불란하게 짐을 챙겨 한강둔치로 향한다.
김씨 부부는 먼저 헬스로 몸만들기에 나섰다. 남편은 직장일에 운동 부족으로, 아내는 출산으로 몸이 불어났다. 헬스로 자신감이 생긴 이들 부부는 수영, 자전거에 이어 인라인에 도전하는 등 만능 스포츠 가족으로 변신 중이다. 인라인 다음에는 전가족이 마라톤에 도전할 계획.
김씨가 운동에 나선 회심(?)의 계기는 좀 특이했다. 2004년말. 회사 차원에서 제약회사이니만큼 사원건강이 중요하다며 살찐 사람들을 자천, 타천으로 선정해 집중관리에 들어간 것.
‘그래, 이 참에 나도 살좀 빼 보자.’ 김차장은 독한 마음을 먹었다. 결혼전 168㎝에 68㎏이었던 탄탄한 몸집이 76㎏으로 불며, 특히 배 부분만 자꾸 볼록해지는 모습에 본인도 괴로웠던 데다 부인 이한숙씨(31)로부터 “그렇게 살이 쪄서 발이 보여?” “옆에 오지 마, 보기만 해도 더워” 등의 구박을 듣는가 하면 코까지 골게 돼 각방을 쓰던 차였다.
3개월 동안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아침마다 헬스를 하고, 아침은 선식으로 먹고 식사량을 줄이며 노력한 결과는 놀라웠다. 허리 사이즈가 38인치에서 30으로 무려 8인치나 줄었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남다르게 내성적이던 아들 기헌이(7)는 아빠와 운동하면서부터 한결 씩씩해졌다. 물에는 얼굴도 못 담그던 ‘운동치’ 부인은 남편의 독려에 헬스와 수영, 자전거, 인라인까지 차례차례 도전했다. 기헌이는 아빠와 단축 마라톤도 세번이나 참가했다.
주말중 하루는 잠실쪽 한강둔치나 종합운동장을 가는 날이다. 돗자리와 축구공, 배드민턴, 인라인 등은 항상 차에 실려있으니 물만 챙기면 된다. 4월에 돌잔치를 하는 둘째 이안이는 유모차에 태워놓고 부부가 교대로 지키며 운동한다. 인라인도 타고 배드민턴과 축구를 몇 판씩 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네다섯시. 야외에서 자장면이며 밥을 시켜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갈 때는 솔직히 귀찮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땀흘리고 난 다음의 쾌감을 한번 맛본 사람이면 이 재미에 중독되죠.”
이 가족의 꿈은 이안이가 자라서 가족 모두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것이다.
자, 출발!
〈글 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